3이닝 49구. 숫자만 보면 별거 아닌 등판이다. 그런데 1호와 같이 본 4월 24일 고척돔의 그 3이닝은,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안우진이 복귀 후 세 번째 선발 등판을 마쳤다. 상대는 삼성 라이온즈, 결과는 키움의 6대4 승리. 안우진 본인 성적은 3이닝 2피안타 1볼넷 6탈삼진 1실점.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게 뭔지,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955일을 건너온 직구, 그게 다시 160을 찍었다

복귀 첫 등판이 4월 12일이었다. 2023년 8월 팔꿈치 수술, 그 뒤 군 복무, 2025년 8월 어깨 부상까지 겹쳐 마운드를 떠나 있던 시간이 정확히 955일이다.

 출처: 955일 만에 1군 복귀 안우진, 첫 타자부터 160㎞/h→안타왕 3구 삼진....키움팬 기립 박수 [IS 고척] - 일간스포츠

 

그날 1이닝 무실점, 최고 구속 160km. 첫 타자한테 4구 연속 157km 이상 직구를 꽂아 넣은 장면은 솔직히 좀 무서웠다. 빅터 레이예스를 3구 삼진으로 잡을 때, 1호도 옆에서 "어 진짜 빠르네" 하고 말했다.

두 번째 등판인 4월 18일 KT전은 분위기가 달랐다. 2이닝 1실점, 직구 비중을 28구 중 11개로 줄이고 슬라이더 7개·커브 6개·체인지업 4개를 섞었다. 속도로 누르는 투수에서 운영하는 투수로 옮겨가는 그림이었다.

 출처: 첫 등판에서는 최고 160㎞, 두번째는 변화구 섞어 2이닝…선발 투수로서의 조건 충족해나가는 키움 안우진

 

그래서 24일 삼성전이 사실상 분기점이었다. 3이닝까지 끌어올리면 선발 로테이션 합류 직전 단계가 된다는 게 사전 평가였는데, 안우진은 거기에 6탈삼진까지 얹어놓고 내려왔다. 최고 구속도 다시 160.3km까지 찍혔다.

1실점인데, 왜 이게 잘 던진 거냐고 묻는다면

복귀 투수의 등판은 점수보다 빌드업의 단계로 본다. 키움이 안우진에게 부여한 미션은 명확했다. 1차 등판은 30구 1이닝, 2차는 28구 2이닝, 3차는 49구 3이닝. 4차에 4이닝 이상을 던지면 정식 로테이션 진입이다.

이번 등판에서 체크해야 할 건 세 가지였다. 첫째 이닝을 늘려도 구속이 떨어지지 않는가, 둘째 변화구를 더 던질 수 있는가, 셋째 위기에서 자기 공을 던지는가. 결과적으로 셋 다 통과했다고 보는 게 맞다. 6탈삼진은 운영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신호고, 구속 160.3km는 회복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신호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두 차례 등판 모두 볼넷이 나왔고, 직구가 한 번 정타로 맞아 나간 장면도 있었다. 4이닝 이상을 던질 체력과 제구가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단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다음부터는 따로 간다, 키움 선발 재편

설종진 감독이 24일 경기 뒤 한 말이 흥미로웠다. "안우진과 배동현을 다음부터는 따로 등판시킨다"는 거였다.

 출처: '와' 키움, 더 무서워진다! "안우진, 다음부터 배동현과 별도 등판" 더 무서워진다→ 선발 재편 본격화 - 머니투데이

 

지금까지는 배동현이 한 경기를 길게 끌고, 그 다음 날 안우진이 짧게 받쳐주는 변형 로테이션이었다. 이걸 분리해 각자 한 경기 한 명씩 끌고 가는 정상 로테이션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안우진의 복귀 빌드업이 끝나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설 감독은 "두 선수가 각자 10승씩 해주면 팀에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 4월 말 9위에 머물러 있는 키움 입장에서, 사실상 5월 이후 반등의 핵심 카드를 안우진에게 거는 셈이다.

마무리 — 1호가 키움 팬을 유지하기로 했다

직관을 자주 다니지는 못해도, 안우진이 복귀한 뒤로 1호가 키움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4월 12일 첫 등판 영상을 같이 본 것이 계기였다.

"아빠, 안우진 대박 160km" 그날 1호가 한 말이다. 야구는 결국 누가 던지는 공이 빠른지, 누가 그 공을 쳐내는지 단순한 게임이라 아이도 금방 빠져든다. 5월 이후 안우진이 4이닝, 5이닝으로 늘려갈 동안 1호와 다시 고척돔 한 번 가보려고 한다. 좌석은 3루 외야 쪽, 직구가 미트에 박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로 말이다.

4월 12일 일요일 2시, 고척에서 키움과 롯데 경기가 있었다. 1호와 함께 가려고 표를 부랴부랴 구했는데 쉽게 나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표가 안 풀리나 했더니 안우진 복귀전이었다. 955일 만의 1군 등판. 어쩐지.

다행히 3층 304구역 A열 연석 두 자리를 잡았다.

12시 고척, 마킹부터 시작했다

경기 2시간 전에 1호와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유니폼 마킹을 했다. 1호는 57번 박주홍, 나는 41번 안우진. 생각보다 마킹이 꽤 이쁘게 나와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같이 히어로즈 투명 백팩도 하나 사줬는데 이게 은근 괜찮은 아이템!!. 경기장 입장할 때 가방 검사도 편하고 굿즈 넣기도 좋다.

마킹 사진 1호는 57번 박주홍 나는 41번 안우진

 

304구역 A열은 3층 맨 앞줄이다. 1루 내야 쪽이라 투수판과 타석이 한눈에 들어오고, 무엇보다 앞에 가리는 머리가 없어서 어린 1호가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응원보다 야구 그 자체를 보는 걸 좋아하는 1호한테는 딱 맞는 자리였다.

고척스카이돔 1루 내야 3층 304구역 A열 View

1회초, 24구로 끝난 복귀전

안우진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 순간 304구역 주변이 전부 일어섰다.

초구부터 불을 뿜었다. 전광판에 158, 159가 연달아 찍히더니 기어코 160km/h가 한 번 찍혔다. 평균 구속도 157km 언저리였다. 1이닝 24구,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내려갔다.

출처:   955일 만에 1군 복귀 안우진, 첫 타자부터 160㎞/h→안타왕 3구 삼진....키움팬 기립 박수 [IS 고척] - 일간스포츠

 

1이닝만 던지고 교체된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 한 이닝이 주는 밀도가 달랐다. 955일을 기다려서 본 장면이 이거라면 충분했다. 옆자리 1호한테 "아빠 저 공 쳐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라.

안우진,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 현재 국내 투수 No.1에 손색이 없다.

1회말 초구, 이주형이 넘겼다

안우진이 들어가자마자 1회말 공격. 1번 타자 이주형이 들어섰다. 그리고 초구를 그대로 담장 너머로 넘겼다. 솔로 홈런, 선제점.

고척돔이 진짜 떠나갔다. 304구역에서 봐도 타구 각도가 뻔한 홈런이었다. 1호가 벌떡 일어나서 두 손을 들고 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어제 경기에서 지고 "팬 바꿔야 하나" 중얼거리던 애가 맞나 싶었다.

 

이주형은 이 홈런으로 결승타를 만들었다. 이후 배동현이 2회부터 7회까지 무실점으로 롯데 타선을 틀어막았고, 9회는 김재웅이 올라와 마무리했다. 어제 9회에 악몽을 꿨던 김재웅이라 조마조마하게 봤는데 이번엔 잘 막아줬다.

 

1호의 얼굴이 바뀌었다

전날 경기에 져서 시무룩하던 1호가 오늘은 경기 내내 눈을 반짝였다. 안우진이 160을 찍을 때, 이주형이 넘길 때, 김재웅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을 때 전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경기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빠, 나 키움 팬 조금 더 해볼래"라고 하더라. 어제는 팬을 바꾼다더니. 이겨서 기분이 좋은 건 당연하지만, 승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언젠가 알려주고 싶다. 어제처럼 지는 날도, 안우진처럼 955일을 기다리는 시간도 결국 다 야구라는 것. 

 

마냥 나는 아들과 이런 야구 경기를 함께 볼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

 

히어로즈 풀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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