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사랑하는 1호의 마음은 주말에도 어김없다. 평일에 못 던진 공이 주말이면 더 던지고 싶고, 방망이도 더 휘두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근처에 갈 만한 데가 없나 찾아보다가 야구연습장을 하나 발견하고 예약해서 다녀왔다.

 

이름은 "고릴라야구연습장". 주소는 구로로 되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신도림에 가까웠다. 실내라 날씨 걱정 없이 공 던질 데를 찾던 참이라 일단 가봤다.

 

 

네이버지도

고릴라야구연습장

map.naver.com

고릴라야구연습장 서울 구로구 경인로 590

룸이 생각보다 알차다

장소가 굉장히 쾌적했다. 캐치볼 룸 1개, 타격룸 3개, 티볼 룸 2개(T볼 머신기, 토스 머신기) 구성이다. 1호와 나는 캐치볼 룸을 1시간 예약하고, T볼 머신기 룸을 30분 추가로 잡았다.

 

1호는 아직 어려서 빠른 공이 날아오는 걸 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1호한테 T볼 머신기는 딱 좋은 옵션이었다.

전체 (좌), 타격장 (중), T볼 장(우)

캐치볼 1시간은 너무 짧았다

캐치볼 룸은 둘이서 마주 보고 던지기에 딱 알맞은 공간을 줬다. 글러브며 라이브 피칭, 속도 측정기까지 있어서 1호랑 캐치볼 연습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1시간을 예약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다음엔 2시간을 예약해야겠다 싶었다.

캐치볼 룸에서 라이브 피칭, 속도 측정기도 있어서 아이들과 아빠에게 최적이다

타격룸은 1호한테 아직 빨랐다

타격룸은 70~100km로 속도 조절이 되고 랜덤으로 나오게도 할 수 있는 공간인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다만 1호는 아직 70km짜리 공을 치는 건 무리여서 밖에서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나 혼자 몇 개 쳐봤는데, 1호한테 영상 좀 찍어달라고 했더니 영상은 안 찍고 혼자 중계를 해놨더라고요. 나중에 보니 화면은 천장만 잡혀 있었다.

제일 만족한 건 T볼 머신기 룸

특히 만족스러웠던 공간은 T볼 머신기 룸이다. 공을 올려놓으면 계속해서 T볼을 올려주는 기계가 있는데, 매번 배트 휘두르고 싶다던 1호한테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30분 동안 방망이를 휘두르는데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T볼 머신룸, 계속 올라와서 체력을 빼기 최고다.

초심자한테 편한 점

주차장이 빌딩 바로 옆에 있어서 편했다. 주말엔 웨딩홀 주차장으로도 쓰는 듯한데, 그냥 빌딩 왔다고 하고 들어갔다. 음료 자판기도 있고 주차 정산도 됐다.

 

무엇보다 글러브나 배트가 없어도 다 준비돼 있다. 그래서 1호나 나 같은 초심자도 장비 없이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마무리

주말에 실내에서 야구 한번 해보고 싶다면 가볼 만하다. 1호는 벌써 다음에 또 가자고 조른다. 다음엔 캐치볼을 2시간으로 잡아야겠다.

 

2026년 5월 31일 일요일, 키움과 KT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아내가 1호랑 다녀오라며 R.d-club(로얄다이아몬드클럽) 좌석을 잡아줬다. 장당 11만 5천원. 솔직히 가격표를 보고 한 번 숨을 골랐다. 그런데 자리에 앉는 순간, 이 돈이 왜 이만큼인지 단번에 알겠더라고요.

C게이트로 들어가니 줄이 사라졌다

첫 혜택은 입장에서부터 나왔다. 마침 안우진 티셔츠를 나눠주는 날이었다. 연간회원권이 있으면 경기 2시간 30분 전부터 들어가서 여유롭게 받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면 티셔츠 받겠다고 긴 줄을 서야 했다. R.d-club은 C게이트로 따로 빠르게 입장이 된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쑥 들어가서 티셔츠부터 챙겼다.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니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1호 손 잡고 여유롭게 자리까지 걸어 들어가는 그 기분은 솔직히 괜찮았다. 안우진 티셔츠도 챙겼으니 1호는 그걸로 충분히 신이 났다.

안우진 기념 티셔츠, 선발 안우진까지 있었다면 완벽했을텐데 아쉽다

 

자리에 앉고 나서 뷰를 보고는 말이 안 나왔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포수 미트에 공 꽂히는 소리가 이렇게 컸나 싶을 만큼 생생했다. 야구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1호는 너무 잘 보인다며 신이 났다. 앞에 그물망이 있어서 살짝 아쉽긴 한데, 경기가 시작되니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1호는 평소 파울볼 맞을까 봐 늘 긴장하는 편인데, 그물이 눈앞에 있으니 더 마음 놓고 보는 것이 다행이였다.

R.d-club D02 구역 D4 VIEW

그라운드 셀카타임, 1호 인생 최고의 시간

R.d-club의 또 다른 혜택은 그라운드 셀카타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였다. 1호랑 그라운드 캐치볼도 해보고 싶었지만, 두 이벤트는 같은 시간에 진행되고 캐치볼은 추첨이라 확실치가 않다. 그래서 R.d-club이라면 셀카타임에 참여하고, 캐치볼은 다음에 다른 티켓으로 도전하는 게 맞다고 봤다.

 

이 셀카타임이 진짜 색다른 경험이었다. 덕아웃을 처음으로 코앞에서 봤고, 선수들이 몸 풀러 하나둘 나오면서 하이파이브도 해줬다. 1호한테는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요. 키움 선수들이 조금 더 환하게 웃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화이팅. 선수들 사이에서 그라운드를 직접 밟아보고, 전광판에 잡힌 우리 모습을 보니 1호도 나도 괜히 들떴다.

그라운드 셀카 타임
선수들과의 하이파이브 (좌,로젠버그), 선발 투수 박준현 (우)

소파 의자, 아이랑 직관하기엔 이만한 자리가 없다

타석 들어가기 전 선수들 몸 푸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좋았다. 투수 볼 스피드가 몸으로 체감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1호랑 화장실 들락날락하기에도 최고였어요.

 

좌석은 소파로 되어 있다. 간이 테이블도 꺼내 쓸 수 있고 앞뒤 간격이 넉넉해서, 1호 같은 어린이한테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좁은 좌석에서 무릎 굽히고 버티는 직관과는 차원이 달랐다. 먹을 거 올려두고, 1호는 중간중간 소파에 기대 쉬다가 다시 경기에 빠져들고. 세 시간 가까운 경기가 길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R.d-club 좌석, 거의 뭐 영화관이다

 

단점은 딱 하나, 사악한 가격이다. 그것 말고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음엔 아내랑 1호, 2호까지 다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앉아보길 추천한다.

 

오늘 경기는 5대 1로 졌다. 그래도 1호랑 보낸 이 하루는 한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마운드에서 142km짜리 직구가 들어갔다. 박준영. 5월 10일 LG 트윈스전, 1군 데뷔전이자 첫 선발 등판이었다.

결과만 보면 5이닝 3피안타 3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 79구를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한화는 이날 9-3으로 이겨 박준영은 데뷔전 선발승을 챙겼다. 그런데 이 한 줄짜리 기록이, KBO 45년 만에 처음 나온 장면이었다.

육성선수 출신 첫 데뷔전 선발승

박준영은 2002년생, 충암고와 청운대를 거쳤다. 작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호명되지 못했다. 한화 서산 테스트를 통과해 올해 육성선수 신분으로 입단한 케이스다.

 

육성선수가 1군에서 데뷔전 선발 등판으로 승리투수가 된 건 KBO 45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떨어진 선수가 같은 해 1군 마운드에 올라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것이다.

 

이 기록의 의미는 단순한 "첫 사례" 이상이다. 한화 육성 시스템과 본인의 자기관리가 모두 맞물려야 가능한 결과라는 뜻이다. 퓨처스리그에서 7경기(6선발) 4승 무패, 평균자책 1.29. 1군이 부를 수밖에 없는 숫자를 본인이 만들어두고 있었다.

 출처: 한화 초대형 사고 쳤다, '불꽃야구 스리쿼터' 육성 신인 맞아? 1군 데뷔전 5이닝 2K 무실점 쾌투→첫 승 보인다

142km 직구 + 변화구 조합

이날 박준영의 무기는 빠르지 않았다. 최고 구속 142km. 요즘 KBO 신인 투수 영상에서 흔히 보는 150km대 파이어볼러는 아니다.

대신 79개 공의 분배가 흥미로웠다. 직구 43개, 슬라이더 19개, 체인지업 12개. 직구 비율이 절반 정도, 나머지는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고 헛스윙을 끌어냈다. 우완 쓰리쿼터 폼에서 나오는 공의 각도가 LG 타자들 시야에 어색했던 것 같다.

 

3사사구가 다소 많긴 했지만 결정적인 장타는 내주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맞춰 잡는" 투구다. 빠르지 않은 공으로 5이닝 무실점을 만든 게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한화 마운드에 또 하나의 옵션이 생긴 셈이다.

"불준영"이라 불리는 이유

박준영은 작년 예능 프로그램 불꽃야구에 출연했던 선수다. 팬들 사이에서는 "불준영"이라는 별명으로 더 익숙하다. 불꽃야구 쓰리쿼터, 그 이미지가 그대로 1군 마운드로 옮겨왔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본인은 이렇게 말했다. "진짜 많이 떨렸는데 마운드에 있을 때 최대한 즐기려고 했다." 또 "오늘 하루 진짜 잊지 못할 것 같다. 함성과 환호가 진짜 많은 힘이 됐다"고도 했다.

 

KBO 최초 기록 얘기를 듣고는 "정말 신기했다"고만 했다. 별명에 대해서도 "어떻게 불러주셔도 감사하다"고 답했다. 무겁지 않은 톤. 마운드 위에서도 표정이 어둡지 않은 이유가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거든요.

 출처: 한화 위닝시리즈 이끈 '불꽃야구' 박준영 "내게는 잊지 못할 경기"

한화의 위닝시리즈, 강백호와 허인서의 홈런

같은 날 타선도 함께 터졌다. 5회 강백호의 우월 솔로 홈런(비거리 135m), 6회 허인서의 좌중월 솔로 홈런(135m). 두 선수의 홈런 비거리가 똑같이 135m로 찍혔다는 점도 묘하게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이 승리로 한화는 LG를 상대로 2연속 위닝시리즈를 가져갔다. 박준영의 데뷔전이 단발성 깜짝 쇼가 아니라 시리즈 흐름의 한 축이 됐다는 뜻이다. 김경문 감독이 경기 후 "어려운 시기에 박준영이 선발투수로 자기 역할을 완벽하게 해주고 내려왔다"고 한 말도 그래서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출처: '불꽃야구 스리쿼터' 한화 박준영, KBO 최초 대기록 수립…이글스, LG 9-3 대파

마무리

내가 야구를 꾸준히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장면 때문이다. 드래프트에서 호명되지 못한 선수가 1년도 안 돼 1군 데뷔전 선발승을 거두는 건, 시나리오로 짜도 안 믿길 일이다.

 

그리고 더 감동이였던건 이 선수의 인성때문이지 않았을까 한다. 불꽃야구에서 드래프트에 호명이 되지 않았을 때 부모님을 꽉 안아주던 모습, 뒷바라지 해주느라고 감사하다고 하던 멘트 등의 기억이 아직 있기 때문이다.

 

박준영 본인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안 된 부분을 더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화려한 멘트는 아니지만, 1년 사이 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하게 하는 한 줄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등판이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컨디션과 로테이션 사정에 따라 달라질 거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142km짜리 쓰리쿼터 직구로도 1군에서 5이닝을 막을 수 있다는 걸, 박준영이 직접 보여줬다는 것. 대전 직관 일정 잡으시는 분들, 박준영 선발 로테이션 한번 확인해보세요. 1호 데리고 가도 좋을 것 같은 경기가 한 번 더 나올 수 있겠더라고요.

 

토요일 오후 2시 고척스카이돔. 1호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키움 패밀리데이라 그런지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이날 KT전, 그 자리에 있던 보람을 9회말에 받았다.

패밀리데이 분위기 - 아이 손잡고 가기 좋은 날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키움이 준비한 패밀리데이는 평소 직관과 결이 달랐다. 경기 전 그라운드 캐치볼 이벤트, 경기 종료 후에는 직접 베이스를 밟아볼 수 있는 패밀리런까지. 아이를 야구장에 처음 데려가는 부모라면 패밀리데이는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날이라고 봐도 된다.

 

아쉽지만 나는 이벤트 참여 방법을 몰라서 참여를 못했다. 스텝분께 물어보니 현장접수를 받는다고 한다. 다음 번에는 꼭 현장 접수를 성공해봐야겠다.

그라운드 캐치볼

 

전광판도 평소와 달랐다. 선수 프로필 사진 자리에 어린이 팬들이 직접 그린 선수 초상화가 올라왔다. 최주환, 원종현 같은 이름 옆에 삐뚤빼뚤한 그림이 뜨는 순간, 옆자리 가족들이 다 같이 웃었다. 

전광판에 뜬 패밀리 데이 기념 최주환 이미지

경기 흐름 - 하루 종일 맘 졸였던 한 경기

전날 9일 경기는 연장 11회까지 가서 6대 6 무승부로 끝났다. 양 팀 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만난 토요일 경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부터 흐름이 묘했다. 6회 KT에게 1점을 내주었지만 대타 브룩스의 적시타로 1:1로 경기는 유지되어갔다.

9회말, 안치홍의 한 방

9회말, 오선진의 행운 안타와 박주홍의 안타 그리고 서건창에게 고의사구 결국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타석에 안치홍, 오늘 굉장히 괜찮은 퍼포먼스의 홍이 형이였다. 

타격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타구가 솟아오르는데 처음엔 중전 안타인줄 알았다. 그러나 공은 더 흘러갔고 극적인 끝내기 만루 홈런이 이루어 졌다. 나와 1호는 그야말로 환호성을 터뜨렸다. 

야구가 왜 드라마라고 불리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한 컷이었다.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 홈베이스로 들어오는 안치홍

마무리

패밀리데이는 야구를 처음 보여주기 좋은 날이다. 이벤트, 아이 눈높이의 연출까지 다 챙겨주니까. 거기에 끝내기 만루홈런이라는 보너스까지 얹어진 날은 살면서 몇 번 안 올 것 같다.

다음 패밀리데이 일정 나오면 무조건 또 올 거다. 1호는 벌써부터 "다음엔 외야석에 앉자"고 한다.

안치홍의 끝내기 만루홈런 아직도 찌릿하다.

인터뷰하는 안치홍

 

새벽 3시. 천장만 쳐다보다가 시계를 보면 또 3시였다.

회사 일이 머릿속에서 안 꺼지는 날, 1호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랑 다툰 일이 자꾸 떠오르는 날, 2호가 새벽에 한 번 깨면 그대로 잠이 달아나는 날. 누우면 잡생각이 시작됐고 시계가 4시를 가리킬 때쯤이면 그냥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한두 주 반복하니 사람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본 게 루시에(Lucier) 안경이었다. 운동선수들이 수면 회복용으로 쓴다는 말이 솔깃해서 데일리·나이트 두 가지를 한 번에 질렀다. 한 달 좀 넘게 써본 솔직한 후기다.

데일리는 회사에서, 나이트는 퇴근 후에

 출처: LUKE BLACK DAY LENSES – LUCIER

루시에는 두 라인으로 나뉜다.

종류차단 영역권장 착용 시간

데이(데일리) 렌즈 인공 블루라이트 95% 차단 (380~500nm) 낮 시간 실내·모니터 작업 시
나이트 렌즈 블루라이트·그린라이트 100% 차단 (400~550nm) 해 진 후 ~ 취침 2시간 전부터

나는 회사에서 모니터 두 대 보면서 하루 9시간 이상 화면을 노려본다. 거기에 점심엔 폰, 퇴근길엔 또 폰. 눈이 안 피곤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데일리는 출근하자마자 책상에 올려두고 모니터 앞에 앉을 때마다 쓴다. 처음엔 색감이 살짝 노랗게 보여서 어색했는데 사흘쯤 지나니 적응이 됐다.

나이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에서 바로 쓴다. 우리 집은 거실 등이 LED라서 꽤 밝다. 1호 책 읽어주고, 2호 목욕시키고, 설거지하고, 마지막에 침대 들어갈 때까지 계속 쓰고 있다. 시야가 약간 갈색·앰버 톤으로 보이는데 며칠 지나면 거슬리지 않는다.

한 달 써보고 체감한 변화

 출처: 나이트 렌즈 작동 원리 – LUCIER

가장 분명한 건 잠드는 속도다. 안경 쓰기 전에는 눕고 나서 30~40분은 뒤척였다. 지금은 길어야 15분. 어떤 날은 베개에 머리 닿자마자 끝난다.

그다음은 새벽에 깨도 다시 잠드는 게 빨라졌다. 2호가 11개월이라 새벽에 한 번씩 칭얼대는데, 예전엔 2호 재우고 나면 내가 못 자고 그대로 새벽을 새웠다. 요즘은 2호 토닥이고 누우면 다시 잠이 든다. 이 차이가 진짜 크다.

체감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핸드폰 수면 앱 기록도 봤다. 평균 수면 점수가 65점대에서 78점대로 올랐다. 깊은 수면 비중이 늘었고 잠자리 들어가는 시간도 12시 30분에서 11시 50분 정도로 당겨졌다. 안경 때문이라기보다 "퇴근하면 폰 그만 보고 일찍 자야지"라는 의식이 안경을 쓰면서 같이 생긴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안경만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광고 같은 후기는 못 쓰겠다. 안경 사면 불면증이 사라진다고 기대하면 실망한다.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의 효과는 학계에서 아직 의견이 갈린다. 수면 잠복기를 줄여준다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일반 렌즈와 차이가 없다는 무작위 대조 시험도 있다. 100% 차단이라는 수치는 분명 인상적이지만, 사람마다 효과가 다른 건 당연한 일이다.

내 경우엔 불면의 진짜 원인은 빛이 아니라 머릿속 잡생각이었다. 회사 스트레스, 아이 둘 키우면서 쌓이는 피로, 다음 주에 처리해야 할 일들. 이게 안 풀리면 안경을 써도 안 자진다. 실제로 일이 가장 빡빡했던 주에는 나이트 렌즈를 쓰고도 새벽 2시까지 깨어 있었다.

그래서 안경과 같이 시작한 게 몇 가지 더 있다.

  • 자기 전 30분은 폰 안 보기 (이게 제일 어렵다)
  • 저녁 8시 이후 카페인 금지 (오후 라떼 한 잔 빼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났다)
  • 자기 전 5분 호흡 명상

안경은 이 루틴을 도와주는 도구지, 그 자체가 해법은 아니다. 이걸 인정하고 쓰면 만족도가 올라간다.

단점도 적어둔다

  • 데일리 렌즈는 약간 노란빛이라 사진 작업이나 색감 보는 일에는 부적합
  • 나이트 렌즈는 블루라이트 차단이 확실하기 때문에 신호등이 초록불이 안보인다, 운전할때는 벗어야 한다.
  • 가격이 저렴하진 않다. 두 개 사면 꽤 들어간다

마무리

수면이 부족한 아빠는 다음 날 모든 게 무너진다. 1호한테 짜증을 내고, 2호한테 인내심이 바닥나고, 회사에서 실수가 늘고, 그러면 또 잠을 못 잔다.

루시에 안경이 그 악순환을 끊어주는 첫 단추가 되어준 건 맞다. 하지만 단추는 단추일 뿐이다. 결국 마음의 안정과 스트레스 관리를 같이 해야 잠이 돌아온다. 같은 고민하는 아빠가 있다면, 안경부터 사기보단 자기 전 폰 끄는 것부터 해보길 권한다. 그게 안 되면 그때 안경을 추가해도 늦지 않다.

5월 2일 고척스카이돔. 안우진이 5회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순간, 1호와 같이 보던 중계 화면에서도 박수가 한참 멈추지 않았다. 981일이 걸렸다. 2023년 8월 25일 대구 삼성전 이후, 안우진이 1군 마운드에서 다시 승리 투수가 되기까지.

복귀전을 봤을 땐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4월 12일 롯데전에서 1이닝만 던지고 내려왔을 때, 구속은 분명 돌아왔는데 이 몸으로 시즌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돼서 5이닝을 책임지고, 승리까지 챙겼다.

 출처: 파이낸셜뉴스

5이닝 67구, 5탈삼진 2실점

이날 안우진의 기록은 5이닝 67구 3피안타 무사사구 5탈삼진 2실점(1자책). 최고 구속 158km/h가 찍혔다.

1회와 3회는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았다. 흔들린 건 4회였다. 무사 1·2루 위기에서 양의지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아 2점을 내줬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그 직후였다. 후속 타자들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흔들리고 다시 잡는 회복력, 부상 이전 안우진 그대로였다.

키움 타선도 받쳐줬다. 1회 김건희의 적시타로 선제점을 뽑았고, 4회말 양현종과 권혁빈이 연속 적시타를 치며 4-2로 다시 앞서갔다. 안우진은 5회까지 마운드에 올라 승리 요건을 채웠고, 박정훈·원종현·카나쿠보 유토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부상 이전 폼은 아니지만

복귀전 때 찍힌 160km/h를 봤던 사람이라면, 이날 158km는 살짝 아쉬울 수 있다. 그런데 단판 1이닝과 5이닝 풀가동은 다른 이야기다. 투구수 67개를 5이닝에 분배했다는 건 효율적인 카운트 운영이 됐다는 뜻이고, 무사사구는 제구도 잡혔다는 뜻이다.

본인도 욕심을 내비쳤다. 복귀전 직후 "7~8이닝 못 던지면 기회 없다"라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이날 5이닝은 그 목표로 가는 두 번째 계단이었다. 설종진 감독도 "계획된 투구수 안에서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복귀 후 첫 선발승을 축하한다"라며 손뼉을 쳤다.

 출처: 엑스포츠뉴스

955일에서 981일로 가는 26일

복귀 자체가 955일 만이었다. 2023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1군에서 사라졌고, 그사이 팔꿈치 수술과 사회복무요원 복무, 어깨 재부상까지 겹쳤다. 작년 시즌 막판 복귀를 시도했다가 퓨처스 훈련 중 다시 다친 일은 팬들에게도 꽤 뼈아팠다.

복귀전이 4월 12일, 첫 승이 5월 2일. 3주 만에 1이닝에서 5이닝으로 늘어났다. 이게 무리한 페이스인지 적정한 페이스인지는 시즌이 끝나봐야 안다. 다만 이날 이 마운드 위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앉아 있었다고 한다. 샌디에이고, 애리조나, 탬파베이, 피츠버그. 한 경기 보러 온 게 아니라 등판마다 따라붙는 모양새다.

 출처: 머니투데이

마무리

키움은 이 승리로 9위 자리를 지켰다. 순위만 보면 시즌 분위기가 마냥 좋다고 하긴 어렵다. 그래도 안우진이 5이닝씩 끌고 가주는 시즌이라면, 적어도 후반기 그림은 달라진다.

1호도 지난 직관 때부터 "안우진 또 던져?"를 종종 묻곤 했다. 등판이 정해진 날 한 번 같이 직관을 가볼 생각이다. 부상 전 그 공이 다시 나오는 순간을, 이번엔 화면이 아니라 외야에서 보고 싶어졌다.

토요일 오후 1시, 1호 손을 잡고 고척스카이돔 입구를 지났다. 박병호 은퇴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어렵게 구한 표였다. (무려 3루쪽) 그런데 라인업이 발표되고 보니, 같은 경기에 신인 박준현의 데뷔 첫 선발 등판이 잡혀 있었다.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이 같은 날 같은 마운드 위에 겹쳤다.

 

고척돔 3루 3층 309구역 전경

한 시대의 마무리, 박병호의 마지막 장면

은퇴식 타이틀은 '승리, 영웅 박병호'였다. 박병호는 2005년 LG에서 데뷔해 넥센·키움·KT·삼성을 거쳐 다시 키움으로 돌아왔다. 통산 17시즌, 1,768경기, 타율 0.272, 홈런 418개, 타점 1,244개. KBO 역대 최다 6차례 홈런왕에, 2014~2015년 2년 연속 50홈런 이상을 친 유일한 타자였다.

 

특별 엔트리에 4번 타자 1루수로 등록됐다가 경기 시작 직후 교체돼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시구는 박병호의 아들이 맡았다. "제게 히어로즈란, 박병호에게 야구란이라는 질문과 같다"는 은퇴사를 들으며 1호 옆에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했다.

 출처: ‘국민 거포’ 박병호 은퇴식…“내게 야구란? 히어로즈!”

 

은퇴식에 아들과 함께 시구와 시타를 하는 모습을 보니 아들과 같이 있어서 그런지 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1호에게 건넨 한마디

은퇴식을 보면서, 1호가 핫도그를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슬쩍 말했다.

"너도 나중에 꼭 저런 멋진 사람이 되어보자."

1호는 핫도그를 입에 문 채 알겠다고 했다. 본인도 뭔가 은퇴식에 서있는 박병호가 멋있어 보였던거 같다. 한 분야에서 저런 멋진 대우를 받으면서 마무리를 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박병호의 기록들이 보이자 1호도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박병호 은퇴식을 위한 전광판 모습

같은 마운드, 시작을 알린 박준현

은퇴식이 끝나고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박준현이었다. 2026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북일고 출신, 계약금 7억의 대형 신인이다.

1호는 박준현이라는 이름을 잘 몰랐다. 1군 첫 선발이니 당연하다.

5이닝 4피안타 4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 패스트볼 최고 159km/h. 

KBO 역대 35번째 데뷔전 선발승, 13번째 고졸 신인 선발승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데뷔전이라는 부담을 생각하면 의젓한 출발이었다.

박준현의 피칭 모습

 

야구장이 가르쳐 준 세대 교체

경기는 키움이 2-0으로 이겼다. 삼성은 7연패. 박병호의 은퇴식에서 박준현이 호투를 해줬다.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순리라고 생각한다. 부디 박병호가 이제 코치로써 키움의 선수들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3이닝 49구. 숫자만 보면 별거 아닌 등판이다. 그런데 1호와 같이 본 4월 24일 고척돔의 그 3이닝은,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안우진이 복귀 후 세 번째 선발 등판을 마쳤다. 상대는 삼성 라이온즈, 결과는 키움의 6대4 승리. 안우진 본인 성적은 3이닝 2피안타 1볼넷 6탈삼진 1실점.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게 뭔지,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955일을 건너온 직구, 그게 다시 160을 찍었다

복귀 첫 등판이 4월 12일이었다. 2023년 8월 팔꿈치 수술, 그 뒤 군 복무, 2025년 8월 어깨 부상까지 겹쳐 마운드를 떠나 있던 시간이 정확히 955일이다.

 출처: 955일 만에 1군 복귀 안우진, 첫 타자부터 160㎞/h→안타왕 3구 삼진....키움팬 기립 박수 [IS 고척] - 일간스포츠

 

그날 1이닝 무실점, 최고 구속 160km. 첫 타자한테 4구 연속 157km 이상 직구를 꽂아 넣은 장면은 솔직히 좀 무서웠다. 빅터 레이예스를 3구 삼진으로 잡을 때, 1호도 옆에서 "어 진짜 빠르네" 하고 말했다.

두 번째 등판인 4월 18일 KT전은 분위기가 달랐다. 2이닝 1실점, 직구 비중을 28구 중 11개로 줄이고 슬라이더 7개·커브 6개·체인지업 4개를 섞었다. 속도로 누르는 투수에서 운영하는 투수로 옮겨가는 그림이었다.

 출처: 첫 등판에서는 최고 160㎞, 두번째는 변화구 섞어 2이닝…선발 투수로서의 조건 충족해나가는 키움 안우진

 

그래서 24일 삼성전이 사실상 분기점이었다. 3이닝까지 끌어올리면 선발 로테이션 합류 직전 단계가 된다는 게 사전 평가였는데, 안우진은 거기에 6탈삼진까지 얹어놓고 내려왔다. 최고 구속도 다시 160.3km까지 찍혔다.

1실점인데, 왜 이게 잘 던진 거냐고 묻는다면

복귀 투수의 등판은 점수보다 빌드업의 단계로 본다. 키움이 안우진에게 부여한 미션은 명확했다. 1차 등판은 30구 1이닝, 2차는 28구 2이닝, 3차는 49구 3이닝. 4차에 4이닝 이상을 던지면 정식 로테이션 진입이다.

이번 등판에서 체크해야 할 건 세 가지였다. 첫째 이닝을 늘려도 구속이 떨어지지 않는가, 둘째 변화구를 더 던질 수 있는가, 셋째 위기에서 자기 공을 던지는가. 결과적으로 셋 다 통과했다고 보는 게 맞다. 6탈삼진은 운영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신호고, 구속 160.3km는 회복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신호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두 차례 등판 모두 볼넷이 나왔고, 직구가 한 번 정타로 맞아 나간 장면도 있었다. 4이닝 이상을 던질 체력과 제구가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단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다음부터는 따로 간다, 키움 선발 재편

설종진 감독이 24일 경기 뒤 한 말이 흥미로웠다. "안우진과 배동현을 다음부터는 따로 등판시킨다"는 거였다.

 출처: '와' 키움, 더 무서워진다! "안우진, 다음부터 배동현과 별도 등판" 더 무서워진다→ 선발 재편 본격화 - 머니투데이

 

지금까지는 배동현이 한 경기를 길게 끌고, 그 다음 날 안우진이 짧게 받쳐주는 변형 로테이션이었다. 이걸 분리해 각자 한 경기 한 명씩 끌고 가는 정상 로테이션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안우진의 복귀 빌드업이 끝나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설 감독은 "두 선수가 각자 10승씩 해주면 팀에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 4월 말 9위에 머물러 있는 키움 입장에서, 사실상 5월 이후 반등의 핵심 카드를 안우진에게 거는 셈이다.

마무리 — 1호가 키움 팬을 유지하기로 했다

직관을 자주 다니지는 못해도, 안우진이 복귀한 뒤로 1호가 키움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4월 12일 첫 등판 영상을 같이 본 것이 계기였다.

"아빠, 안우진 대박 160km" 그날 1호가 한 말이다. 야구는 결국 누가 던지는 공이 빠른지, 누가 그 공을 쳐내는지 단순한 게임이라 아이도 금방 빠져든다. 5월 이후 안우진이 4이닝, 5이닝으로 늘려갈 동안 1호와 다시 고척돔 한 번 가보려고 한다. 좌석은 3루 외야 쪽, 직구가 미트에 박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로 말이다.

 

6이닝 10피안타 11탈삼진 3실점. 그런데 패전이다.

지난 4월 1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알칸타라가 던진 기록지다. 숫자만 보면 희한하다. 피안타가 10개인데 삼진이 11개고, 볼넷은 하나도 없다. 최고 구속은 154km까지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한 경기 두 자릿수 탈삼진을 잡은 게 2023년 6월 8일 잠실 한화전이었으니, 1038일 만에 다시 찍은 숫자다. 3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출처:   154km 쾅! 20승 에이스 살아있네! 1038일 만에 두 자릿수 K…타선이 야속하다 [오!쎈 고척] - 머니투데이

 

오랜만에 야구 중계를 틀었는데 이날은 묘하게 집중하게 됐다. 20승 시절의 그 알칸타라가 다시 보이는 것 같아서. 동시에 타선은 또 그 타선이어서.

154km, 그리고 포크볼 35개

이날 알칸타라는 총 98구를 던졌다. 직구 46개, 포크볼 35개, 슬라이더 17개. 스트라이크 비율 77.6%. 사사구 0. 숫자가 꽤 이상적이다.

직구 최고 154km는 최근 2~3시즌 그의 평균을 넘어서는 수치다. 34세 투수가 4월 초에 벌써 이 구속을 찍는 건 드물다. 보통 외인 투수들은 시즌 중반으로 갈수록 페이스를 올리는데, 알칸타라는 첫 달부터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포크볼 35개는 힌트다. 한창 잘 던지던 2020~2022년의 알칸타라는 직구 커맨드로 먹고살았다. 맞춰 잡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헛스윙 유도형 포크볼을 적극적으로 섞었다. 11개 삼진 중 상당수가 낮게 떨어지는 공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볼넷 없이 삼진 11개를 잡으면서 피안타 10개를 맞은 것도 얘깃거리다. 컨트롤은 돌아왔는데 맞는 공은 여전히 맞았다는 뜻이거든요. 다만 이닝당 주자 관리는 나쁘지 않아서 3실점으로 막은 거고요.

문제는 타선이었다

맞상대 롯데의 엘빈 로드리게스는 8이닝 4피안타 1실점 11탈삼진을 기록했다. 양 팀 선발 투수가 모두 두 자릿수 탈삼진을 잡은 건 KBO 리그 역사상 17번째다. 공교롭게도 둘 다 도미니카 출신이다.

즉 알칸타라가 못 던져서 진 경기가 아니다. 키움 타선이 로드리게스 앞에서 안타 4개에 그쳤다. 1038일 만에 찍은 두 자릿수 탈삼진이 패전으로 기록되는 이유다. 야구에서 가장 허무한 박스스코어 중 하나가 이런 거다.

키움은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지적받던 타선 득점력 문제가 올해 초반에도 반복되고 있다. 1호가 "아빠 알칸타라 또 졌어?"라고 묻는데 대답하기 애매했다. 졌지, 근데 알칸타라는 잘 던졌어. 이걸 일곱 살한테 어떻게 설명할까 싶었다.

부활인가, 반짝인가

팬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건 이거다. 이 경기가 20승 에이스 시절의 부활 신호인지, 아니면 시즌 초 반짝인지.

조심스럽게 보자면 몇 가지 긍정 신호가 있다.

  • 구속 회복: 154km는 최근 2시즌 기준으로 상위 수치다. 시즌 첫 달에 이미 나온다는 건 구위 자체가 돌아왔다는 뜻이다.
  • 사사구 0: 나이 든 투수가 제구를 잃으면 회복이 어렵다. 이날은 컨트롤이 살아있었다.
  • 구종 배분 변화: 포크볼 비중을 올린 건 본인이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예전 공만 믿고 던지지 않는다.

다만 피안타 10개는 짚어야 한다. 11K를 잡으면서도 10안타를 맞았다는 건 배트에 걸린 공은 제대로 걸렸다는 의미다. 구위로 헛스윙은 유도했지만 존 안에서 맞은 공은 정타가 많았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이게 누적되면 평균자책점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다음 등판이 진짜다. 4월 중순 이후 두세 경기를 더 봐야 판단이 선다. 154km가 한 번 나오는 것과 매 경기 150km 초반을 꾸준히 유지하는 건 다른 얘기다.

마무리

34세 외인 투수의 "부활"은 흔히 착시다. 한 경기 기록지만 보고 흥분하면 나중에 실망한다. 그걸 여러 번 겪어봤다.

그런데 이번 건 구속이 돌아왔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나이 든 투수가 제구를 찾는 건 가능하지만, 빠진 구속이 돌아오는 건 드물다. 그게 돌아왔다면 얘기를 해볼 만하다.

다음 알칸타라 등판은 아마 4월 16일 전후일 것 같다. 이때 150km 초중반을 유지하면서 삼진을 또 솎아낸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돌아왔다"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시즌 초반 키움 마운드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 안우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월 중순이 된 지금, 보드판을 뒤집고 있는 건 배동현이다.

28살 우완. 한화 5라운더 출신. 지난해 35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빠져 2차 드래프트 3라운드로 키움에 넘어온 선수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카드 한 장" 정도였다. 그런데 4월에만 3승, 평균자책점 1.65. 그것도 리그 공동 다승 1위로 올라섰다.

1767일 만의 선발, 그리고 첫 승

4월 1일 인천 SSG전. 배동현의 2026시즌 첫 등판이었다. 동시에 2021년 5월 29일 대전 SSG전 이후 1767일 만에 밟은 1군 선발 마운드였다. 5년이면 야구 인생이 한 번 뒤집히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 사이 배동현은 주로 퓨처스에서 던졌고, 한화는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결과는 5이닝 5피안타 1볼넷 무실점. 타선은 11-2로 밀어줬고, 그는 데뷔 첫 선발승을 챙겼다. 경기 후 인터뷰가 꽤 인상적이었다. "개인 첫 승도 의미가 있지만, 팀의 연패를 막아낸 게 더 기쁘다"고 하더라고요. 5년 퓨처스 생활을 한 선수의 말 치곤 차분했다. 

출처: 데뷔 첫 선발승...키움 마운드 단비 배동현 "팀 3연패 끊어서 기쁘다" [IS 스타] - 일간스포츠

4월 7일 두산전 —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

그 다음 등판도 깔끔했다. 4월 7일 두산 원정에서 5⅓이닝 5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2실점. 이것도 승리투수. 첫 선발이 운이 아니었다는 걸 두 번째 등판에서 증명한 셈이다.

한국 프로야구 통산 1승 투수가 NPB 66승 거물을 잡았다는 기사 제목이 4월 1일에만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4월 내내 비슷한 톤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통산 1승'인 투수, 'NPB 66승' 거물 잡았다…배동현 데뷔 첫 '선발승'→키움+설종진 감독 '첫 승' [SS문학in] : 네이트 스포츠

 

그리고 4월 13일 롯데전 — "우진이 뒤를 지켜주고 싶었다"

오늘(4월 13일) 롯데전이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다. 설종진 감독의 오프너 운영으로 안우진이 1회만 던지고 내려갔고, 2회부터 7회까지 6이닝을 배동현이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78구, 최고 구속 148km. 팀은 2-0 승리. 시즌 3승째, 평균자책점은 2.61에서 1.65로 내려갔다.

경기 후 한 마디가 오늘 뉴스의 헤드라인이었다.

"우진이가 선발로 1이닝을 던졌는데, 좋아하는 동생 뒤를 잘 지켜주고 싶었다."

 

이 말을 28살 형이 23살 에이스 동생한테 한 거다. 5년을 퓨처스에서 버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 괜히 뭉클했다. 

경기 이후 인터뷰 중인 배동현 선수

왜 지금 터졌을까

솔직히 폼이 완전히 뜯어고쳐졌는지, 아니면 키움 배터리 리드가 잘 맞는 건지는 더 봐야 안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정리하면 이 정도다.

 

항목내용

2026 4월 성적 3승 0패, ERA 1.65
최근 등판 4/13 롯데전 6이닝 무실점, 최고 148km
팀 내 역할 설종진 감독 오프너 뒤 롱릴리프 겸 선발
이적 경로 한화 35인 제외 → 2025년 2차 드래프트 3라운드 키움

 

오프너로 안우진을 1이닝 쓰고 뒤를 배동현이 받치는 운용이 설종진 감독의 새로운 카드로 자리 잡는 느낌이다. 선발진이 얇은 키움 입장에서는 이 조합이 생각보다 오래 갈 수 있겠다 싶다.

마무리

한화에서 5년간 1승. 키움에서 13일 만에 3승. 이 숫자 대비만으로도 스토리가 되는데, 본인이 인터뷰에서 팀 승리와 동생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더 반갑다.

1호는 요즘 키움 경기 볼 때마다 "오늘 선발 누구야?"부터 물어본다. 배동현이라고 하면 "그럼 보자" 한다. 우리 집 저녁 채널이 바뀐 건, 4월 1일 이후다.

시즌 3승이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지금 키움 마운드에서 가장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안우진이 아니라 배동현이라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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