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이닝 10피안타 11탈삼진 3실점. 그런데 패전이다.
지난 4월 1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알칸타라가 던진 기록지다. 숫자만 보면 희한하다. 피안타가 10개인데 삼진이 11개고, 볼넷은 하나도 없다. 최고 구속은 154km까지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한 경기 두 자릿수 탈삼진을 잡은 게 2023년 6월 8일 잠실 한화전이었으니, 1038일 만에 다시 찍은 숫자다. 3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오랜만에 야구 중계를 틀었는데 이날은 묘하게 집중하게 됐다. 20승 시절의 그 알칸타라가 다시 보이는 것 같아서. 동시에 타선은 또 그 타선이어서.
154km, 그리고 포크볼 35개
이날 알칸타라는 총 98구를 던졌다. 직구 46개, 포크볼 35개, 슬라이더 17개. 스트라이크 비율 77.6%. 사사구 0. 숫자가 꽤 이상적이다.
직구 최고 154km는 최근 2~3시즌 그의 평균을 넘어서는 수치다. 34세 투수가 4월 초에 벌써 이 구속을 찍는 건 드물다. 보통 외인 투수들은 시즌 중반으로 갈수록 페이스를 올리는데, 알칸타라는 첫 달부터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포크볼 35개는 힌트다. 한창 잘 던지던 2020~2022년의 알칸타라는 직구 커맨드로 먹고살았다. 맞춰 잡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헛스윙 유도형 포크볼을 적극적으로 섞었다. 11개 삼진 중 상당수가 낮게 떨어지는 공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볼넷 없이 삼진 11개를 잡으면서 피안타 10개를 맞은 것도 얘깃거리다. 컨트롤은 돌아왔는데 맞는 공은 여전히 맞았다는 뜻이거든요. 다만 이닝당 주자 관리는 나쁘지 않아서 3실점으로 막은 거고요.
문제는 타선이었다
맞상대 롯데의 엘빈 로드리게스는 8이닝 4피안타 1실점 11탈삼진을 기록했다. 양 팀 선발 투수가 모두 두 자릿수 탈삼진을 잡은 건 KBO 리그 역사상 17번째다. 공교롭게도 둘 다 도미니카 출신이다.
즉 알칸타라가 못 던져서 진 경기가 아니다. 키움 타선이 로드리게스 앞에서 안타 4개에 그쳤다. 1038일 만에 찍은 두 자릿수 탈삼진이 패전으로 기록되는 이유다. 야구에서 가장 허무한 박스스코어 중 하나가 이런 거다.
키움은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지적받던 타선 득점력 문제가 올해 초반에도 반복되고 있다. 1호가 "아빠 알칸타라 또 졌어?"라고 묻는데 대답하기 애매했다. 졌지, 근데 알칸타라는 잘 던졌어. 이걸 일곱 살한테 어떻게 설명할까 싶었다.
부활인가, 반짝인가
팬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건 이거다. 이 경기가 20승 에이스 시절의 부활 신호인지, 아니면 시즌 초 반짝인지.
조심스럽게 보자면 몇 가지 긍정 신호가 있다.
- 구속 회복: 154km는 최근 2시즌 기준으로 상위 수치다. 시즌 첫 달에 이미 나온다는 건 구위 자체가 돌아왔다는 뜻이다.
- 사사구 0: 나이 든 투수가 제구를 잃으면 회복이 어렵다. 이날은 컨트롤이 살아있었다.
- 구종 배분 변화: 포크볼 비중을 올린 건 본인이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예전 공만 믿고 던지지 않는다.
다만 피안타 10개는 짚어야 한다. 11K를 잡으면서도 10안타를 맞았다는 건 배트에 걸린 공은 제대로 걸렸다는 의미다. 구위로 헛스윙은 유도했지만 존 안에서 맞은 공은 정타가 많았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이게 누적되면 평균자책점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다음 등판이 진짜다. 4월 중순 이후 두세 경기를 더 봐야 판단이 선다. 154km가 한 번 나오는 것과 매 경기 150km 초반을 꾸준히 유지하는 건 다른 얘기다.
마무리
34세 외인 투수의 "부활"은 흔히 착시다. 한 경기 기록지만 보고 흥분하면 나중에 실망한다. 그걸 여러 번 겪어봤다.
그런데 이번 건 구속이 돌아왔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나이 든 투수가 제구를 찾는 건 가능하지만, 빠진 구속이 돌아오는 건 드물다. 그게 돌아왔다면 얘기를 해볼 만하다.
다음 알칸타라 등판은 아마 4월 16일 전후일 것 같다. 이때 150km 초중반을 유지하면서 삼진을 또 솎아낸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돌아왔다"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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